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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2일 [아침묵상]

6/22/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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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열왕기하11장 17-20절 제목 : 온전한 개혁을 해야 합니다. 찬송 : 280장
 
17 여호야다가 왕과 백성에게 여호와와 언약을 맺어 여호와의 백성이 되게 하고 왕과 백성 사이애도 언약을 세우게 하매 18 온 백성이 바알의 신당으로 가서 그 신당을 허물고 그 제단들과 우상들을 철저히 깨뜨리고 그 제단 앞에서 바알의 제사장 맛단을 죽이니라 제사장이 관리들을 세워 여호와의 성전을 수직하게 하고 19 또 백부장들과 가리 사람과 호위병과 온 백성을 거느리고 왕을 인도하여 여호와의 성전에서 내려와 호위병의 문 길을 통하여 왕궁에 이르매 그가 왕의 왕좌에 앉으니 20 온 백성이 즐거워하고 온 성이 평온하더라 아달랴를 무리가 왕궁에서 칼로 죽였더라 아멘

 
할렐루야, 아멘. 오늘도 허락하신 은혜의 날에 영적인 준비를 잘하여 모든 전쟁에서 승리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오늘부터 경제가 재개 됩니다. 모든 삶의 현장에서 더욱 철저하게 방역하고 영적으로도 더욱 준비하여 위기를 기회로 만들며 역전시키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기를 축원합니다.
 
역사의 어두운 그림자속에서도 하나님의 역사는 언제나 현재진행형입니다. 다윗을 향하여 왕위를 지속하시겠다는 약속이 요아스를 구출함으로 지켜지며 더 나아가 제사장 여호야다의 개혁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통치하심이 남유다에 빛을 발하기 시작합니다. 제사장 여호야다는 하나님앞에서 신실한 자였습니다. 아달랴의 위협속에서도 믿음으로 개혁을 합니다. 나라의 모든 사람들이 바알을 섬기는 자리에 있을 때에 하나님은 준비된 믿음의 사람을 통하여 역사의 줄기를 바꾸시며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드러내십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서도 하나님은 역사하심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동역자로 어떻게 우리의 삶에서 개혁을 이루어 갈 수 있을까요?
 
먼저는 언약을 갱신하는 것입니다. 여호야다는 왕과 백성이 여호와와 언약을 맺게 합니다. 이미 백성들과 하나님과의 언약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맺어졌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이 죄를 지었기에 이제 갱신을 한 것입니다. 왜 언약의 갱신이 먼저인가요? 개혁에 가장 중요한 것은 방향입니다. 어느 방향으로 가느냐에 따라서 역사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계신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만이 목적이 되는 방향이어야 합니다. 하나님만이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이십니다. 하나님만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는 만주의 주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의 방향은 어디를 향하고 있습니까?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언약을 잊게 하고 느슨하게 합니까? 언약이 확실한 백성을 하나님은 기억하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주님과 우리는 사랑의 피로 언약을 맺었습니다. 이 언약이 언제나 끊어지지 않는 은혜의 줄이 되어 하나님과 동행의 삶을 살기를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언약을 갱신하면 이제 회개를 해야 합니다. 버려야 할 것을 버리고 회복해야 할 것은 회복시켜야 합니다. 바알의 신당을 허뭅니다. 제단들과 우상을 철저히 깨뜨립니다. 바알의 제사장을 죽입니다. 버려야 할 것들입니다. 악은 모양이라고 버리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작은 틈이 결국 댐을 무너지게 합니다. 북이스라엘도 동일한 시대에 예후를 통한 개혁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예후는 철저하게 개혁을 하지 못합니다. 산당을 남겨두는 어리석음을 범하였습니다. 그의 개혁은 아무런 빛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신앙은 언제나 전심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전심으로 할 때에 성령께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회복할 것을 회복합니다. 성전을 지키며 모든 백성들로 하여금 성전을 경외하게 합니다. 영을 깨끗하게 하면 반드시 그 안에 영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을 모셔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의 삶에서 우리가 개혁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철저하게 행하기를 원합니다.
 
마지막으로 개혁은 감사와 기쁨을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개혁의 함정이 인간의 힘으로 한다고 여겨질 때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하여 일하십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도구로 삼아서는 안됩니다. 그러기에 일의 끝에는 오직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이 드려져야 합니다. 개혁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바로 끝에 자신을 개혁을 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개혁하지 않고서는 개혁의 주체가 결국 개혁의 대상이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누구나 진보되어야 하고 변화되어야 합니다. 개혁되어야 합니다. 이일에 우리 모두가 동의하고 지속적으로 개혁됨으로 감사와 영광을 아버지께 올려드리는 오늘 한 날의 신앙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나눔 :
1) 주님과 맺은 언약은 탄탄하십니까?
2) 나의 삶에 개혁되어야 할 부분은 무엇인가? 고쳐야 할 부분은?

기도 :
1) 언제나 내 자신이 개혁되어야 할 대상이라는 점을 잊지 않게 하소서
2) 경제가 재개 되는 모든 상황에서 감사와 기쁨이 넘치게 하소서
3) 성전예배의 리오픈을 위하여 오후9시에 기도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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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0일 [아침묵상]

6/20/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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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빌립보서 2장 5-8절 제목 : 주님의 마음을 가졌습니다. 찬송 : 455장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지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아멘

 
할렐루야, 아멘.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한 주의 마지막 날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주일이 지나면 닫혀졌던 사업장의 문들을 열기위하여 준비해야할 때입니다. 새로운 회복을 위하여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신경 쓰고 준비해야 하지만 더욱 우리가 준비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신앙입니다. 무엇보다 주님이 주인 되심이 신앙의 결과라면 주님의 마음을 품고 살기로 결단하는 재결심이 우리들에게 있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부른 찬송의 작시자는 가브리엘 목사입니다. 이 분은 찬송가중에 “주 예수 내 맘에 들어와 계신 후”“ 주님의 마음을 본 받는 자” “잠시 세상에 내가 살면서” “저 높은 곳을 향하여”등 찬송을 작시한 분입니다. 그분의 찬송은 한결같이 소망을 노래하며 주님의 마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자신의 아들이 1차 세계대전에 나가게 되었답니다. 그 아들이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 아빠 만약에 제가 돌아오지 못하면 하늘나라 열린 문에서 만나 뵙겠습니다” 고난중에 소망과 주님의 마음을 품기를 찬송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의 인생도 힘들고 어렵습니다. 무엇보다 힘든 것은 고난의 때에 우리의 마음을 더욱 훈련하여 주님을 닮아가는 마음으로 연단되어야 하는 데 그렇게 되지 못함이 늘 좌절스러운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믿는 자의 삶은 상황이나 환경에 휩쓸리는 인생이 아니기에 우리는 소망이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것은 세상이 바라보는 소망과 주님이 말씀하시는 소망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하시는 소망은 슈퍼맨의 마음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마음을 품는 것임을 말씀합니다. 주님의 마음은 낮은 마음입니다. 주님의 마음은 가난한 마음입니다. 주님의 마음은 십자가를 지는 마음입니다. 주님의 마음은 우리를 위한 사랑의 마음입니다. 주님의 마음은 자기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마음입니다. 이 마음은 세상이 알아주지 않고 세상을 잘 사는 데 도움이 되지 않으며 언제나 곤고하고 힘든 길로 인도하는 마음입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이 마음을 가지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입니까? 이 마음을 가진 자가 최후의 승리를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마음을 가진 자 만이 예수님 앞에 세상이 무릎 꿇을 때에 함께 영광의 자리에 앉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아침 주님의 마음을 품는 우리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이미 주님은 우리에게 주님의 마음을 주셨습니다. 주님의 마음은 주님이 주인인 마음입니다. 주님이 주인 되는 마음은 나는 죽고 주님이 살아 역사하는 성령 충만한 마음입니다. 어떻게 이일이 가능합니까?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은 포기하는 마음입니다. 주님은 하늘의 모든 것을 포기하셨습니다. 포기하신 이유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위하여 포기할 수 있음은 사랑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 사랑을 이미 받았습니다. 그 사랑에 대한 확신이 있을 때에 우리는 경험하게 됩니다. 문제는 오늘도 예수의 사랑을 확신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은 확신하고 계십니까? 첫 사랑을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삶에서 참된 행복을 언제 경험 하였는지를 생각하기를 원합니다. 무엇이 우리를 가장 행복하게 하였는가 말입니다. 주님의 사랑에서 부터입니다. 그 사랑이 조건적인 사랑이 아니라 무조건적인 사랑이었습니다. 주님앞에 나아가면 부어주시는 사랑이고 주님을 부르면 언제나 기다리셨고 응답하시는 사랑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변함없는 그 사랑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 사랑을 위하여 다른 것을 포기해야 합니다. 그 포기는 결국 십자가의 죽음을 경험하게 됩니다. 진정으로 포기할 수 있음은 십자가에서 죽지 않고서는 경험할 수 없는 일입니다. 십자가가 주는 마음은 죽음과 그리고 소망입니다. 한쪽으로만 치우치지 않습니다. 반드시 동시에 일어나며 순서 또한 바뀌지 않습니다. 오늘 십자가를 질수 있다면 십자가에서 죽고 살수 있다면 주님의 마음을 품은 것입니다.
 
오늘 내 앞에 준비된 십자가를 가슴에 품고 주님의 마음을 품기를 원합니다. 그 십자가가 우리에게 승리를 주고 우리에게 사랑을 깨닫게 하며 주님의 개입하심을 경험하게 할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의 마음으로 주님 닮아갑시다.
 
나눔 :
1) 내가 생각하는 주님의 마음은 어떤 마음인가요?
2) 주님의 마음을 품기 위하여 내가 행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기도 :
 1) 언제나 어느 상황에서도 주님의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게 하소서
2) 영적, 경제적, 육신적으로, 신분으로 힘든 교우들에게 은혜를 주소서
3) 경제 재개와 성전 리오픈을 위하여 늘 기도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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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9일 [아침묵상]

6/19/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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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누가복음 5장 12-16절 제목 :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찬송 : 456장
 
12 예수께서 한 동네에 계실 때에 온 몸에 나병들린 사람이 있어 예수를 보고 엎드려 구하여 이르되 주여 원하시면 나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니 13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나병이 곧 떠나니라 14 예수께서 그를 경고하시되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또 네가 깨끗하게 됨으로 인하여 모세가 명한 대로 예물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하셨더니 15 예수의 소문이 더욱 퍼지매 수많은 무리가 말씀도 듣고 자기 병도 고침을 받고자 하여 모여 오되 16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 아멘

 
할렐루야, 아멘. 우리를 위하여 일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이 우리에게는 소망이요 감사입니다. 주님은 일하심은 보내신 이의 뜻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보내신 이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는 것입니다. 영생을 주시고 그날에 승리를 주시는 것입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입니다. 어느 순간, 어느 형편에서도 예수를 믿는 자가 영생을 소유한 자입니다. 오늘 우리 모두가 이 영생을 경험함으로 일하시는 주님을 경험하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일하시는 주님께서 한 나병환자를 치유하시는 장면입니다. 본문 이전에 주님은 베드로를 제자로 부르십니다. 베드로는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입니다 고백합니다. 그리고 나병환자가 등장합니다. 죄인의 모습이 이와 같음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말씀입니다. 우리 모두는 나병환자입니다. 단순한 육신의 질병을 가진 자가 아니라 치유 받을 수 없는 인생임을 의미합니다. 모든 것이 썩어짐으로 죽어가도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죄를 안고 죽는 우리들입니다. 이 죄인을 고치십니다. 오늘 나의 삶에도 고쳐야만 하는 죄가 있다면 정결케 되기를 원합니다.
 
먼저 주여 원하시면이라 말합니다. 나병환자의 소망은 주님뿐이라는 믿음입니다. 그리고 치유의 주권을 절대적으로 주님께 의지하고 있습니다. 오직 주님의 은혜만을 바라는 믿음입니다. 가장 절박한 상황에서도 주님을 절대적으로 믿고 의지하는 이 믿음을 주님은 바라시고 이 믿음이 결국 일하시는 주님을 경험하게 합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픈 삶의 상황이 있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막막함이 있습니다. 사람들 사이로 나올 때에 돌에 맞아 죽을 수 있는 어둠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뒤로하고 주님앞으로 나아옵니다. 믿음은 직진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앞으로 돌진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상식적인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여러 선택중에 한 가지를 선택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전부입니다. 믿음외에는 길이 없는 것이 믿음입니다. 주여 원하시면 이 고백이 오늘 우리에게 살아있는 믿음이 되기를 원합니다.
 
두 번째로 주님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십니다. 믿음으로 서는 이들에게 주님은 반드시 역사하십니다. 이것이 진리입니다. 우리가 말씀대로 나아가면 주님은 말씀위에서 행하십니다. 때로 주님이 하실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 가는 우리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고난의 때에 금식도 필요하고, 결단도 필요하고 무엇보다 더한 헌신으로 서기를 원합니다. 이때에 주님은 손을 내밀어 만져 주십니다. 말씀으로도 역사를 이루시는 데 주님이 손을 내밀어 그를 만지셨습니다. 누구도 만지고 싶지 않는 그 아픔을 주님은 만져 주십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멀리하는 그 자리로 주님은 들어오십니다. 주님의 만지심은 주님께서 병을 가져감을 의미합니다. 주님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그 병에서 정결하게 하십니다. 이 사랑을 주님은 우리에게 허락하십니다. 오늘 우리의 상처를 주님은 만져주십니다. 이 은혜를 알면 다른 이들의 아픔도 만져줄 수 있는 우리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주님은 그에게 제사장에게 예물을 드리라고 합니다. 주님은 율법을 폐하러 오심이 아니라 완전하게 하시기 위하여 오셨음을 우리가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이 그를 그들에게 보냄은 예수가 메시야임을 알게 하시기 위함이며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더 깊은 것은 죄를 용서하시고 죄악을 해결하시는 주님을 믿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전도였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치료하여 영을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에 주님은 기도하러 가십니다. 치유는 단순한 갈망이 아니라 말씀에 순종함에 있음을 그리고 치유 받은 이도 죄를 떠나 더욱 말씀을 사모해야 함을 말씀합니다. 은혜가 있습니까? 더욱 주의 말씀에 순종하며 나아가는 하루이기를 원합니다.
 
나눔 :
1) 주여 원하시면 하는 간절한 믿음이 나에게 있습니까?
2) 주님께서 나의 어떤 부분을 만져주시기를 원합니까?

기도 :
 1) 우리의 삶에 육과 영이 정결케 되는 은혜를 경험케 하소서
2) 영적, 육적, 경제적인 아픔에 손내밀어 만져 주옵소서
3) 성전예배의 리오픈을 위하여 기도하게 하시며 성령충만의 은혜를 주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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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8일 [아침묵상]

6/18/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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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시편 119편 125-128절 제목 : 하나님은 일하고 계십니다. 찬송 : 290장
 
125 나는 주의 종이오니 나를 깨닫게 하사 주의 증거들을 알게 하소서 126 그들이 주의 법을 폐하였사오니 지금은 여호와께서 일하실 때니이다 127 그러므로 내가 주의 계명들을 금 곧 순금보다 더 사랑하나이다 128 그러므로 내가 범사에 모든 주의 법도들을 바르게 여기고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하나이다 아멘

 
할렐루야, 아멘. 생명을 주시고 귀한 아침을 맞게 하신 하나님께 찬송과 존귀를 올려드립니다. 우리를 복음의 동역자로 삼으시고 하늘에서 이루어진 뜻을 우리를 통하여 이 땅에서도 이루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에 이 아침 순종하며 나아갑니다. 바라기는 보지 못한 것을 보게 하옵고 더 깊은 생명으로 자라 하나님을 더욱 깊이 사모하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 이처럼 소망을 우리가 가지는 이유는 아버지가 일하시는 것처럼 주님도 일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오늘 시인은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여호와께서 일하실 때라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일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창세로부터 하나님은 마지막 날까지 일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문제는 하나님이 일하고 계심에도 자신이 깨닫지 못함이 한계이고 어둠입니다. 오늘 시인은 막막한 상황속에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을 경험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도 우리의 삶에서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기를 원합니다. 어떻게 하면 경험할 수 있는 가요?
 
먼저는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의지할 때입니다. 시인의 고백은 어려운 때에 자신을 돌아봅니다. 더욱 하나님만을 의존합니다. 오직 소망이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합니다. 인간의 한계에 하나님은 일하시는 하나님이심을 고백합니다. 잔인한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의 한계를 경험케 함으로 우리로 더욱 깊은 신앙으로 이끌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훈련방법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언제나 우리의 주권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처음부터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 시작하고 주님과 함께 동행하고 주님과 함께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의 삶이 혼자만의 여정이 아닙니다. 언제나 하나님은 그들과 동행하셨고 의지할 때에 비로서 하나님은 역사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인간은 언제나 자신의 힘으로 하려고 합니다. 우리의 기도의 시간이 길어지고 말씀과 찬송의 시간이 더욱 풍성해져야 함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시작이 언제나 주님과 함께이기를 원합니다.
두 번째로 주님의 일하심은 악이 한계에 다다를 때입니다. 오늘 시인은 자신을 박해하는 자들에게 넘기지 말라합니다. 교만한 자들이 자신을 박해하지 않도록 해 달라 합니다. 오직 주의 말씀을 기준으로 살아가는 삶임에도 그럼에도 어려움이 다가옵니다. 악이 극대화 될 때에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때가 바로 하나님의 심판의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각자의 삶에서 심판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 말입니다. 그러기에 악을 보고 언제나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임계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액체가 기체로 바뀌는 한 지점입니다. 지금의 때가 임계점이 아닌가 합니다. 인간의 부정의와 부조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한 이때에 우리는 겸손히 하나님의 일하심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악이시지 않지만 악마저 선하게 사용하십니다. 그러기에 악이 팽창할 때에 더욱 회개하고 일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일하심은 우리로 더욱 주님을 닮아가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주의 말씀을 순금보다 더 사랑하게 된다고 합니다. 주님의 일하심으로 더욱 주의 법도를 바르게 여기고 거짓행위를 미워한다고 말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일하심은 개인을 향하며 그 개인은 아프고 힘이 듭니다. 깨뜨리시고 부숴뜨리며 새롭게 만들어 가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버려야 할 것들을 버려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버려야 할 것들이 무엇인가요? 깨뜨려야 하는 것이 무엇인가요? 나로 더욱 주님을 사랑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요? 바로 그것을 정정하기 위하여 일하십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은 언제나 우리를 고치시는 일하심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아픔은 우리에게 위로입니다. 아버지가 자녀를 훈계하듯이 아픔이 하나님의 일하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고난앞에서 더욱 웃고 감사하기를 원합니다. 왜냐하면 아버지께서 나를 위하여 일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불황중에서도 일하시는 하나님은 능력이 없으신 하나님이 아니라 반드시 역전시키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임을 믿습니다. 오늘 우리 모두가 일하시는 하나님과 동역하십시다. 아멘
 
나눔 :
1) 언제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하십니까?
2)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하기 위하여 나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기도 :
1) 일하시는 하나님을 잊지 않게 하사 우리로 하나님과 동역하게 하소서
2) 영적, 경제적, 육신적으로 힘든 성도들에게 은혜를 더하여 주소서
3) 교회의 리오픈을 위하여 오후 9시에 기도하게 하시며 은혜를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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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7일 [아침묵상]

6/17/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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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열왕기하 2장 1-3절 제목 :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찬송 : 433장
 
1 여호와께서 회오리 바람으로 엘리야를 하늘로 올리고자 하실 때에 엘리야가 엘리사와 더불어 길갈에 나가더니 2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벧엘로 보내시느니라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는지라 이에 두 사람이 벧엘로 내려가니 3 벧엘에 있는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사에게로 나아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 위로 데려가실 줄을 아시나이까 하니 이르되 나도 또한 아노니 너희는 잠잠하라 하니라 아멘

 
예레미야는 자신이 당하는 고난을 쑥과 담즙과도 같다고 합니다. 이러한 고난속에서도 그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아멘입니다. 이 아침 성실하심으로 역사하시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기대합니다. 기다리는 자에게나 구하는 자에게나 여호와 하나님은 언제나 선하신 하나님이심을 믿사오니 오늘도 역전시키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색깔로 표현하면 마치 파란색입니다. 파란색이 안정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외로움과 슬픔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엘리야의 인생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엘리야를 따르고 있는 엘리사의 마음이 무겁습니다. 사랑한 나머지 떠나지 않겠다고 합니다. 가야만 하고 떠남을 원하지 않는 두 사람의 관계가 모든 이들이 경험해야 하는 인생의 진한 장면입니다. 왜 하나님은 이 슬프고 외로운 장면을 열왕기하를 열면서 기록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의미가 무엇인가요?
 
먼저 우리의 인생에도 이와 같은 장면이 있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죽음앞에서 마지막을 믿음으로 받아들입니다. 삶의 모든 것을 놓고 이제 아버지의 집으로 가야만 합니다. 우리도 동일한 상황에서 엘리야처럼 완전한 복종이 하나님 앞에 있기를 원합니다. 아쉬움도 두려움도 없이 지극히 감사한 마음으로 어느 상황, 어느 모습으로 부르실때에 위를 바라볼 수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합니까? 엘리야가 하나님께서 나를 벧엘로 보내신다 합니다. 벧엘은 아버지의 집입니다. 아버지라 하니 자신이 아들입니다. 당연히 있어야 할 그곳입니다. 이 고백에는 순례의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는 순례자입니다. 처음과 돌아갈 곳이 있는 이들입니다. 그곳을 기억하고 사모하는 신앙입니다. 믿음으로는 형제요 영적으로는 아들입니다. 우리 곁에서 사랑하는 자녀들이 그리고 믿음의 식구들이 함께 합니다. 인간의 정이 끈이 아니라 끝까지 함께 하겠노라는 믿음의 결단이 살아 움직입니다. 오늘 하루 이 장면을 소망으로 그려보기를 원합니다.
 
두 번째로 이 장면은 예수님을 생각나게 합니다. 엘리야의 죽음으로 엘리사가 힘을 얻게 됩니다. 엘리야의 헌신이 결국 생명의 열매를 얻습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헌신으로 이 땅에 교회가 생명을 얻고 힘을 얻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더한 능력으로 서는 것이 교회입니다.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를 향한 사랑입니다. 죽음이 양분이 됩니다. 왜 하나님은 왕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까? 인간의 끝없는 반역과 왕들의 변함없는 반역속에서도 그들을 용서하시고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그날을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이 역사안에 흐르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과 생명이 주님의 죽으심으로 인한 것이라면 우리안에 흘러야 할 능력은 무엇입니까? 은혜입니다. 나의 나됨이 결국 주님의 은혜입니다. 주님이 하십니다. 주님의 성실하심을 믿기에 더욱 담대하게 재난의 때를 지나가십시다.
믿음으로 주님곁에 서는 이에게 하나님은 반드시 역전의 은혜를 경험케 하십니다.
 
마지막으로 이 장면의 완성은 어디에 있습니까? 엘리사의 고백입니다.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입니다. 다른 제자들은 스승의 죽음에 초점을 맞춥니다. 스승의 죽음은 그들이 더 이상 이 길을 걸어야 할 이유를 잃게 합니다. 그러기에 비난하고 조소하며 자학합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나지 아니하겠다 합니다. 엘리사는 스승의 떠나라는 명령에 계속해서 자신의 자리를 지킵니다. 왜 입니까? 그것만이 자신의 삶의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나는 무엇에 생명을 걸고 있습니까? 모든 이들이 다 떠나도 나만큼은 주님의 말씀에 붙어 있겠습니다 고백하는 그 한 사람을 주님은 원하고 계십니다. 이 믿음으로 하루를 살고 저녁에는 예배를 통하여 영광을 돌려드리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나눔 :
) 온전한 믿음을 위하여 내 자신이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2) 주님앞에서 절대로 떠나지 않겠습니다하며 고백한 적이 언제인가요?

기도 :
1) 엘리사처럼 주님을 따르되 끝까지 따르는 자가 되게 하소서.
2) 영적, 육적, 경제적으로 곤고한 성도들에게 능력에 능력으로 함께 하소서
3) 교회 성전예배 리오픈을 위하여 저녁 9시에 온 교회가 기도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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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6일 [아침묵상]

6/16/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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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에베소서 6장 13-18절 제목 : 전신 갑주를 취하라 찬송 : 356장
 
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14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15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16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18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들 위하여 구하라 아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아침도 역전의 하나님을 기대하며 하나님 말씀을 사모합니다. 말씀은 영의 양식이기에 힘이 되고 능력이 되는 줄을 믿습니다. 신앙생활은 영적전쟁입니다. 사랑하는 주님께서 이미 십자가에서 승리하셨습니다. 믿는 자에게는 이미 승리가 주어졌습니다. 그럼에도 이 땅에 영적인 전쟁있음은 우리의 성숙을 위한 하나님의 작전입니다. 고난의 과정을 지나며 더욱 주님을 사랑하게 되며 성장과 성숙을 통하여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것을 경험케 하시기 위함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영적인 전쟁앞에 서 있습니다. 어떻게 승리합니까?
 
먼저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기억하고 보아야 합니다. 재난의 때처럼 자신의 잘못이 아님에도 감당하기 힘든 일이 있으며 감정을 상하게 하여 분을 조절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것에 집착하거나 눈에 보이는 것에 분을 표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람을 아프게 하거나 상대방을 탓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적을 생각해야 합니다. 현상에 집중하게 하고 그 일로 무너지게 함으로 결국 관계를 깨뜨리고 더 나아가 하나님 나라를 무너뜨리려는 사단의 계략을 읽어야 합니다. 잘못된 일에 대하여 상대방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선으로 악을 이기는 방법을 취해야 합니다. 우리의 공격은 언제나 선인 오래참음이 되어야 합니다. 선을 택함은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서 언제나 눈에 보이지 않는 적을 기억해야 합니다. 베드로의 행동에 주님은 베드로가 아닌 사단을 지적하는 것을 우리는 배워야 합니다. 오늘 사단의 한 번의 공격에 우리가 승리합시다.
 
두 번째로 영적 전쟁을 수행하기 위하여 우리에게 무기가 필요합니다. 오늘 말씀처럼 진리의 띠로 허리를 묶어야 합니다. 기준이 하나님의 말씀이 되어야 합니다. 힘은 여기에서부터 시작이 됩니다. 의의 호심경을 붙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의가 우리 가슴에 있어야 합니다. 흔들리지 않는 믿음입니다. 복음으로 신을 신어야 합니다. 우리를 보호하는 은혜는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인 복음입니다. 믿음이라는 방패를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을 가져야 합니다. 이 모든 도구가 사실 방어용임을 깨닫게 됩니다.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도 사실 적보다는 우리 자신을 방어하는 데 사용이 되기 때문입니다. 왜 주님은 우리로 방어를 위한 무기만을 허락하신 것입니까? 영적전쟁에서 우리의 승리는 하나님과의 땔래야 땔수 없는 관계입니다. 전쟁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승리는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속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아멘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승리하기에 어떠한 고난속에서도 견디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 과정이 연단이고 훈련임을 알기에 우리를 쳐서 더욱 복종하여 주님이 주인되시는 삶의 시간들을 늘려가야 합니다. 갈라지지 않는 요단강 앞에서 걸어가라 하시면 걸어가는 믿음을 소유해야 합니다. 오늘 삶의 순간마다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속에서 인도하시는 대로 아멘하며 승리합시다.
 
마지막으로 영적인 전쟁의 승리는 결국 기도에 있습니다. 성령안에서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라 하십니다. 기도를 통하여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생명이 주어지고 능력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언급함은 이 길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아니면 걸을 수 없는 길이며 도우심이 없으면 잃어버릴 수 밖에 없는 길임을 의미합니다. 바울에게는 많은 은사와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승리의 끝은 기도에 있음을 고백하는 것을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기도가 무엇입니까? 주님과의 깊은 관계입니다. 신앙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믿는 자는 하나님을 더욱 부르게 되며 하나님 앞에 무릎 꿇게 됩니다. 기도가 깊어질수록 자신의 헛됨을 인식하고 더욱 의지할 수 밖에 없습니다. 교회도 리오픈을 준비하여 온 교우들이 밤 9시에 기도하고 있습니다. 기도외에는 도움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오직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승리를 경험하는 오늘 하루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나눔 :
1) 나에게 부족한 영적 무기는 무엇인가?
2) 영적전쟁을 늘 인식하기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하는가?

기도 :
1) 삶이 영적인 전쟁임을 인정하게 하시고 전신갑주를 취하게 하소서
2) 영적, 육신적, 경제적으로 곤고한 성도들에게 역전의 은혜가 임하게..
3) 교회 리오픈위에 함께 하여 주시고 온 교회가 기도로 준비케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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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5일 [아침묵상]

6/15/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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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누가복음 4장 16-19절 제목 : 사명을 확인하는 삶이 됩시다. 찬송 : 266장
 
16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17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 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르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아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로운 마음으로 헌신을 지속하는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몸에 난 상처도 시간이 필요하듯이 삶에는 적당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반드시 새살이 돋고 힘을 얻듯이 우리의 삶에도 열매가 있을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명을 지속시키는 날까지 반드시 하늘의 위로를 허락하십니다. 그러기에 오늘도 힘들지만 사명을 붙들기를 원합니다. 더 많이 꿈꾸고 더 깊이 그리고 더 넓게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기도가운데 반드시 응답하실 하나님을 기대하며 오늘도 힘차게 소망가운데 전진하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의 3년의 공생애는 세례를 받으시고 금식과 더불어 하나님 말씀으로 시작하십니다. 이 과정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고 사단을 이기시고 이제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구속사가 담겨져 있습니다. 오늘 주님은 회당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습니다. 그 말씀은 예수님의 사명에 대한 말씀입니다. 구원을 위하여 어떻게 하실 것인가를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예언하신 말씀을 선포합니다. 오늘 우리가 구원받은 자라면 이 말씀이 우리 삶속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또한 빚진 자의 위치에서 우리 또한 사명을 감당하기를 원합니다.
 
먼저 예수님의 사명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시는 것입니다. 물질이 없어 가난한 자가 아닙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입니다. 오실 메시야를 갈망하며 현실의 삶속에서 인내하며 견디는 이들입니다. 스스로를 부자라고 여기는 이는 메시야를 기다리지 않습니다. 물질의 부요함이 자신의 행복의 기준이며, 자신의 영혼을 거기에 맡겨버립니다. 세상의 가치는 가난한 자가 아니라 부요한 자가 되라 합니다. 세상은 언제나 물질과 소유로 평가합니다. 인간의 높고 낮음이 정해집니다. 그러나 주님은 세상의 가치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나는 가난한 사람입니까? 부요하되 오직 주님으로만 부요하고 즐거워하십니까? 주님은 사모하는 자들에게 복음을 주십니다. 복음은 주님으로 인해 우리가 부요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의 고백입니다.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아멘입니다.
 
두 번째로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눌린 자를 자유케 한다고 하십니다. 육신의 포로를 넘어서서 영의 포로된 자가 우리입니다. 영이 포로가 되었기에 눈은 감겨져 있으며 행동은 눌려서 살아가게 됩니다. 죄인의 모습입니다. 죄의 결과에 묶여서 살아가는 삶입니다. 죄에서 자유케 하십니다. 죄를 이기는 것은 죄가 없으신 이가 죄 값을 치루어 주셔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일을 이루셨습니다. 세상에 다른 이는 없습니다. 이 은혜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자유로우십니까? 아직도 혹 묶여서 포로가 되는 부분은 없습니까? 예수는 모든 것에서 우리를 자유케 하십니다. 재난의 때에도 주님은 우리를 자유케 하십니다. 영의 눈을 열어주셔서 눈앞에 어려움만 보게 하지 않습니다. 앞으로 반드시 길을 여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시선을 고정케 하십니다. 그러기에 눌려있지 않습니다. 예수만이 우리를 자유케 합니다. 오늘 하루가 자유하기를 축원합니다. 육신의 자유인 방종이 아닌 영이 예수안에서 구속당함으로 참된 자유를 누리기를 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함이 사명이라고 하십니다. 예수이전에는 율법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은혜의 해가 되었습니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행해주시는 이 사실을 믿는 자에게 은혜를 주시는 해입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은혜를 얻기 전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은혜는 주님의 피로 사신 것입니다. 혹 우리가 누리는 은혜를 거저 온 것으로 생각하고 쉽게 무시하고 버리고 포기하며 행동하지는 않습니까? 예배할 수 있음이, 기도할 수 있음이, 찬송할 수 있음이, 소망을 품을 수 있음이 십자가의 은혜입니다. 바라기는 이 은혜를 귀히 받고 이 은혜를 전하는 자유한 사명자가 되십시다.

나눔 :
1) 오늘 하루 동안 나에게 주어진 사명은 무엇인가?
2) 나는 정말 자유한가? 아니라면 어떻게 자유를 경험할 수 있는가?
 
기도 :
1) 새로운 헌신을 지속하는 동역자가 되기를 기도합시다.
2) 성전 리오픈이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이 되도록 기도합시다.
3) 영적, 경제적, 육신적으로 힘든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함께 하기
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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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3일 [아침묵상]

6/13/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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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시편 119편 89-96절 제목 : 하나님 말씀이 최고인 이유 찬송 : 200장
 
89 여호와여 주의 말씀은 영원히 하늘에 굳게 섰사오며 90 주의 성실하심은 대대에 이르나이다 주께서 땅을 세우셨으므로 땅이 항상 있사오니 91 천지가 주의 규례들대로 오늘까지 있음은 만물이 주의 종이 된 까닭이니이다 92 주의 법이 나의 즐거움이 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내 고난 중에 멸망하였으리이다 93 내가 주의 법도들을 영원히 잊지 아니하오니 주께서 이것들 때문에 나를 살게 하심이니이다 94 나는 주의 것이오니 나를 구원하소서 내가 주의 법도들만을 찾았나이다 95 악인들이 나를 멸하려고 엿보오나 나는 주의 증거들만을 생각하겠나이다 96 내가 보니 모든 완전한 것이 다 끝이 있어도 주의 계명들은 심히 넓으니이다 아멘.

 
이 아침 허락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감사드립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기에 택한 자에게 말씀을 주시고 말씀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경험케 하시니 은혜입니다. 남은 날 동안 새벽이슬과 같은 말씀의 생명수를 마셔 갈하지 않는 심령이 되기를 원합니다. 시편 119편은 히브리 알파벳의 첫 단어를 사용하여 말씀의 은혜를 기록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말씀은 시인에게 말씀이 귀하고 좋은 이유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이 좋은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시인처럼 저는 이 때문에 말씀을 사랑한다고 고백하기를 원합니다.
 
시인은 먼저 시작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시인에게 말씀은 시작입니다. 세상이 말씀으로 창조되었고 그 말씀대로 운영되며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라 합니다. 세상이 창조된 원인에 대하여 사람들은 수많은 말을 하지만 인간은 피조물이기에 알 수 없습니다. 오직 창조주만이 아십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이것이 진리입니다. 피조물인 우리도 오직 말씀 안에서만 참입니다. 말씀을 벗어난 인간의 죄악으로 인하여 지금 세상은 고통을 받고 있으며 하나님의 진노아래에 거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잘못되었으면 돌아가야 합니다. 잘못된 과정을 따라가면 결국 불량품이 됩니다. 그러기에 시작점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시작점이 되지 않는 것은 무엇입니까? 바라기는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이 시작점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시작점으로 두지 않는 양심은 결국 심판 앞에 서게 됨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말씀이 시작점이 되어야 합니다.
두 번째로 말씀은 즐거움이라고 합니다. 시인은 말씀이 즐거움을 준다고 합니다. 우리는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을 어렵고 고난이라고 생각하는데 즐거움을 준다고 합니다. 시인의 고백이 맞습니다. 말씀은 은혜로부터 시작되니 우리에게 즐거움을 줍니다. 우리를 죽음에서 구했으니 말씀대로 사는 삶이 행복이고 즐거움입니다. 이 은혜는 오직 죄의 더러움을 아는 이가 경험하는 것입니다. 죄를 더럽게 여기지 않고서는 말씀 안에서 즐거움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시인은 즐거움이 아니었다면 고난 중에 멸망하였을 것이라 합니다. 말씀의 은혜 안에서 고난이 즐거움이 됩니다. 왜냐하면 말씀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사랑이 즐거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기뻐하고 자신을 위한 기쁨을 기쁨이라 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참된 즐거움은 주님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나의 즐거움은 어디에 있습니까? 고난 중에서도 기뻐하고 계십니까? 기쁨이 정말 나를 행복하게 합니까? 말씀을 따름이 즐거움입니다.
 
마지막으로 시인에게 말씀은 영원입니다. 시인은 세상의 모든 것들이 완전한 듯 하나 완전하지 않고 영원한 것 같으나 끝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말씀은 영원하다고 합니다. 끝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세상이 한계가 있음은 벽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단절이며 불통이며 더 나아가 용서가 아니라 정죄며 판단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합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모든 한계가 주안에서 영원이 됩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것이며, 세상이 이길 수 없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탕자는 버림받고 죽어야 하지만 말씀 안에서는 돌아올 곳이 있으며 맞아주실 분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힘이 될 수 없지만 말씀은 우리에게 영원한 능력입니다. 어떻게 그러합니까? 계명을 예수그리스도가 온전케 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나의 마음은 한계가 있는 가요 아니면 영원에서 영원까지 넓혀진 마음인가요? 주님의 마음으로 서기를 원합니다. 끝없이 품고, 소망하고, 사랑하고, 낮추고 포용하는 바다와 같은 마음입니다. 이 마음으로 오늘도 주님을 바라보고 세상을 바라보며 말씀의 능력을 경험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서 이 재난의 때를 이겨내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나눔 :
1) 언제 하나님의 말씀이 즐거움이 됩니까?
2) 우리의 마음이 어떻게 넓은 마음이 될 수 있을까요?

기도 :
1) 하나님의 말씀이 모든 것의 시작점이 되게 하여 주소서.
2) 말씀이 즐거움이 되게 하시며 말씀으로 마음이 넓어지게 하소서.
3) 힘들고 어려운 이들에게 위로를 주시고 성전 회복의 은혜를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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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2일 [아침묵상]

6/12/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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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열왕기상 16장30-34절 제목 : 여호와 보시기에 선해야 합니다. 찬송 : 524장
 
30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그의 이전의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더욱 행하여 31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하는 것을 오히려 가볍게 여기며 시돈 사람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삼고 가서 바알을 섬겨 예배하고 32 사마리아에 건축한 바알의 신전 안에 바알을 위하여 제단을 쌓으며 33 또 아세라 상을 만들었으니 그는 그 이전의 이스라엘의 모든 왕보다 심히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노하게 하였더라 34 그 시대에 벧엘 사람 히엘이 여리고를 건축하였는데 그가 그 터를 쌓을 때에 맏아들 아비람을 잃었고 그 성문을 세울 때에 막내 아들 스굽을 잃었으니 여호와께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를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아멘

 
오늘도 생명을 허락하여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니 오직 하나님만이 왕이십니다. 신앙은 하나님을 나의 왕으로, 나의 하나님으로 모시고 그분의 통치아래에서 호흡하는 것입니다. 이 나라를 하나님의 나라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고 죽어서는 온전한 하나님 나라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오늘 하루 왕이신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날이 되기를 원합니다.
 
성경에서 왕은 하나님께서 원하지 않는 제도입니다. 그러나 인간들이 원하기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입니다. 이 세상에 왕은 오직 하나님 한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역사가운데 몇몇의 왕을 제외하고는 악한 왕입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의 아합 왕은 가장 악하였습니다. 이전의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더욱 행하였다고 기록됩니다. 왕은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이기에 더욱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가장 가까이에서 그리고 백성들에 대한 책임을 가지고 있기에 더욱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그러나 아합은 모든 왕들보다 하나님을 멀리합니다. 여로보암의 죄가 더 가볍다고 합니다. 여로보암의 죄는 치명적입니다. 왕국을 나누었으며 우상을 섬겼으며 자신의 임의대로 예배처소를 만들고 모든 우상들을 섬기는 왕입니다. 그런데 이 왕이 행하던 죄가 오히려 더 가볍다고 합니다. 아합은 그토록 타락하였습니다. 바알을 섬기는 제사장의 딸을 자신의 부인으로 삼았습니다. 바알을 위한 신전을 만들고 제사를 행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노하셨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의 삶은 하나님 보시기에 어떠한가를 묻게 됩니다.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를 잊고 있지는 않는지요? 하나님은 우리를 향하여 노를 발하고 계시는지 아니면 칭찬하고 계시는지 묻게 됩니다. 말씀을 가벼이 여기고, 우상에게 예배하며 섬기는 자리에 거하고 있지는 않는지 회개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변에 혹 이세벨을 놓아두고 있지는 않습니까? 있어야 할 자리를 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은혜를 잊어버리고 거하지 말아야 할 곳에 있지는 않는 지요? 제거해야할 죄된 요소는 없는가요?
 
마지막 절에 이 은혜를 잃어버린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히엘입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다라는 이름의 뜻을 가진 자입니다. 이 사람이 여리고성의 터와 성문을 건축합니다. 그런데 여리고성의 건축에 대하여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통하여 예언을 하셨습니다. 자녀들이 죽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왜 입니까? 무너진 여리고성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깨닫게 하기 위함입니다. 광야 40년 끝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 현장입니다. 성문을 건축하는 것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자신이 왕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일에 하나님은 경고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히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합니다. 큰 아들의 죽음에도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합니다. 결국 막내아들이 죽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아멘입니다. 역사는 하신 말씀대로 이루어집니다. 돌아보면 모든 것이 하신 말씀대로 이루어 졌습니다. 상황이나 환경이나 운이나 운명이 아닙니다. 하신 말씀대로 됩니다. 하신 말씀을 믿음으로 받는 이들에게 이루어집니다. 믿음으로 말씀에 충성할 때에 열매는 맺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승리와 패배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안에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 말씀밖에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언제나 하나님 말씀밑에 우리의 인생을 고정해야 합니다. 인생은 승리는 하나님 말씀대로 이루어질 때입니다. 바라기는 오늘도 히엘을 통한 경고의 말씀을 들으며 언제나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왕의 말씀밑에 거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나눔 :
1) 나의 삶에 악한 영향을 끼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2) 나를 향한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은 무엇인가요?
3) 말씀아래 거하기 위하여 내가 해야 할 일은?
 
기도 :
1) 세우지 말아야 할 것을 세우는 인생이 되지 않게 하소서
2) 재난의 때에 더욱 믿음으로 서게 하사 소망으로 극복하게 하소서
3) 육신적, 영적, 경제적, 신분으로 힘든 성도들에게 위로를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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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11일 [아침묵상]

6/11/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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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에베소서 5장 8-11절 제목 : 참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찬송 : 502장
 
8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9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10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11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하여 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아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루를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경험하는 것이 빛입니다. 빛을 봄으로 생명이 있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빛이 주는 은혜가 참으로 많습니다. 빛은 생명을 자라게 합니다. 빛은 어둠을 몰아내고 밝게 해 줍니다. 빛은 추운 곳을 따뜻하게 합니다. 빛은 길을 잃은 자들에게는 생명길이 되기도 합니다. 빛이 되는 것은 모든 인간의 소망입니다. 그런데 오늘 주님은 우리를 향하여 빛이라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빛이 주는 모든 은혜를 누린다고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는 빛이 맞습니까? 우리가 빛이라면 오늘 우리안에 어둠이 없어야 하는 데 정말 그러합니까? 착하고 의롭고 진실하다면 빛이라 합니다. 주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먼저는 착함입니다. 주안에서 빛이 된 우리는 모두가 착함을 가진다고 말합니다. 착하다는 말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까? 착하다는 말은 다른 이들에게 관대함을 가진다는 말입니다. 인간의 본성은 다른 이들에게 관대할 수 없습니다. 관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를 따를 때입니다. 그러기에 착함이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착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인간적으로 착함을 생각하지만 하나님앞에서의 착함은 나를 죽고 예수안에서 말씀으로 서는 것이 바로 착함입니다. 우리 스스로 관대하고 착할 수 없지만 주안에서 이 모든 일이 가능합니다. 오직 주의 은혜로 말입니다. 내안에 계신 주님으로 인해 우리는 말씀에 순종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힘들고 어려운 때에도 착함이 우리안에 일어나야 합니다. 오직 말씀을 붙잡고 의지하고 걷는 길입니다. 우리안에서 역사하는 빛이 이제는 다른 이들에게 나타나고 그 빛으로 말미암아 주님을 닮아가는 하루가 되기를 원합니다.
 
두 번째는 의로움입니다. 주안에서 나타나는 빛이 가지는 특성이 바로 의로움입니다. 의로움이라는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책임을 다하는 것이 바로 의로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예수님이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이것을 의로움이라 말씀합니다.
우리 스스로 의로울 수 없습니다. 우리의 힘과 노력으로는 그 누구도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대신 행해 주셨습니다. 그러기에 이 사실을 믿는 우리들을 하나님은 의롭다 하십니다. 어느 자리, 어느 형편에서도 주님이 허락하신 의로움은 변할 수 없습니다. 이 의로움은 오직 믿음위에서 나타납니다. 주님이 우리를 의롭게 하셨으니 이제 우리는 이 의로움을 따라 살아가야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언제나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 삶이 빛으로 드러납니다. 좌절속에서도 빛으로 일어서고 절망속에서도 희망의 빛으로 일어납니다. 오직 내안에 계시는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재난의 때에 우리는 때로 책임을 다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빛안에서 의로움의 열매가 우리안에 맺혀지기를 원합니다. 은혜안에서 책임을 다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원합니다.
 
마지막으로 빛이 주는 특징은 진실함입니다. 진실함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 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이야기할 때에 인자와 진실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실 때에 인자함과 진실함으로 돌보십니다. 변하지 않습니다. 참으로 은혜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은 진실합니다. 그 진실함의 예가 바로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그 사랑이 영원함이 오늘 우리안에 있습니다. 우리안에서 드러나야 하는 빛은 변하지 않는 사랑입니다. 변하지 않는 결단입니다. 재난의 때를 지나며 우리들의 마음은 얼마나 많이 변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려움 앞에서, 이익앞에서 그리고 힘든 관계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이 변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변하지 말라 하십니다. 끝까지 영원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라 하십니다. 이때에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멀리한다고 합니다. 변하지 않는 그 사랑이 언제나 우리의 중심이 되기를 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하십니다. 우리안에서 예수그리스도가 드러나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생각하고 만나고 경험하는 모든 것들속에서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으로 드러나도록 행하기를 축원합니다.
 
나눔 :
1) 주안에서 빛된 자로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의 특성이 내안에 있는가?
2) 내가 잘 변하는 부분을 회개하고 변하지 않기 위해 할 일이 무엇인가?
 
기도 :
1) 어두운 현실속에서 빛된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되게 하소서.
2) 재난의 때에 모든 성도들의 삶이 빛된 삶이 되게 하소서.
3) 새로운 헌신의 자리에 서게 하여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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