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시편 92편 1-5절 제목 : 믿음은 기대하는 것입니다. 찬송 : 189장 1-3 지존자여 십현금과 비파와 수금으로 여호와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고 아침마다 주의 인자하심을 알리며 밤마다 주의 성실하심을 베풂이 좋으니이다 4 여호와여 주께서 행하신 일로 나를 기쁘게 하셨으니 주의 손이 행하신 일로 말미암아 내가 높이 외치리이다 5 여호와여 주께서 행하신 일이 어찌 그리 크신지요 주의 생각이 매우 깊으시니이다 아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강한 사람은 고난을 견디어 낸 사람입니다. 고난의 강을 건너지 않고서는 우리는 강하여 질 수 없습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이 고난의 강을 혼자 건너며 세상의 것과 함께 건너려 하여 결국 휩쓸리는 인생이지만 우리는 주님과 함께 건너가기에 감사와 기쁨이 있습니다. 오늘 이 아침에도 예수와 그리스도가 연결되는 삶이되기를 원합니다. 오늘 시편의 말씀은 주의 백성들이 안식일에 성전에 올라가며 드리는 찬양입니다. 거룩한 성전의 가는 길에 주님께서 행하신 일을 기억하며 감사하는 찬양입니다. 오늘 우리의 인생에도 주님이 주시는 기쁨과 감사는 무엇일까를 기대합니다. 믿는 자들에게만 주시는 은혜를 기대하기를 원합니다. 시인은 먼저 아침마다 주의 인자하심을 감사한다고 합니다. 인자라고 하는 말은 자비라는 말입니다.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단어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이 사용하시는 단어입니다. 그들에게 인자는 자비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성전으로 계시고 인간을 살리기 위하여 제사를 허락하시고 그들에게 속죄를 선포하는 임재의 현장이 바로 하나님의 인자입니다. 그러기에 그들의 입에는 감사와 기쁨이 있습니다. 죽어야하는 인생이 아침에 다시 눈을 뜨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자비하심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어느 순간 눈을 뜰 수 있음은 자비입니다. 아직도 이 땅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눈을 감기전에 해야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고 그분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어제 보다 오늘 더 역사하실 하나님의 인자를 기대합니다. 재난의 때에 하나님이 예비하신 은혜를 소망합니다. 아버지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이 아침에 인자를 베풀어 주옵소서 시인은 이제 저녁이 되어 감사할 조건이 있다 합니다. 주님의 성실하심을 감사한다고 말합니다. 성실은 믿음이며 진실입니다. 성실은 바로 신랑이 신부에 대한 약속을 뜻합니다. 신랑되신 하나님께서 신부된 우리를 인도하심이 성실입니다. 이것이 진리입니다. 순간의 삶에 하나님의 성실하심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도 성실해야 합니다. 우리는 정직해야 합니다. 우리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이 향하는 방향은 바로 거룩함입니다. 이 거룩함을 위하여 고치시고 위로하시고 회복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진행중입니다. 그 역사에 하나님은 언제나 성실하십니다. 그럼 오늘 우리는 무엇을 행해야 하겠습니까? 성실하신 주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성실은 우리를 통한 성실하심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의 성실하심은 우리의 변화이며 그 변화는 결국 주님을 사랑하며 닮아가게 합니다. 우리의 입에서, 행동에서, 생각에서 주님의 성실하심으로 우리가 주님을 닮아가기를 원합니다. 오늘도 우리안에서 주님은 이일을 행하십니다. 우리의 부족함 때문에 주님은 십자가에서 고난의 피를 흘리십니다. 주님의 성실하심이 우리에게는 감사의 눈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으로 인해 주님이 행하신 일이 크고 주의 생각이 심히 깊으시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 반드시 이러한 일이 일어남을 믿습니다. 그러기에 더욱 의지하고 믿고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인자와 성실로 함께 하실 우리 하나님을 기대합니다. 그와 같은 이가 여호와의 집에 심겨진 종려나무와 백향목과 같다고 말씀합니다. 번성하여 늙어서도 여전히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다 합니다. 남은 우리의 시간이 이러한 은혜가 충만하여 주님의 인자와 성실을 십현금과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하며 감사합시다. 아멘 나눔 : 1) 아침에 주님의 인자하심을 그려보기를 원합니다. 2) 저녁에 주님의 성실하심을 감사하는 기도를 생각하십시다. 3) 주님의 신부로 거룩함을 향하여 나아가는 데 필요한 것은무엇인가요? 기도 : 1) 삶의 시작과 끝이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기쁨이 되게 하소서. 2) 재난의 때에 하나님을 더욱 기대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3) 죽음의 행렬에 머무는 자가 아니라 산자의 대열에 서게 하소서. 4) 경제적, 영적, 육신적, 신분적으로 어려운 이들을 도우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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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사사기 20장 17-18 제목 : 생명의 전투를 합시다. 찬송 : 350장
17 베냐민 자손 외에 이스라엘 사람으로서 칼을 빼는 자의 수는 사십만 명이니 다 전사라 18 이스라엘 자손이 일어나 벧엘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여쭈어 이르되 우리 중에 누가 먼저 올라가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유다가 먼저 갈지니리 하시니라“ 아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복음을 연결하는 자로, 생명을 연결하는 자로, 하나님 나라를 연결하는 자로 서는 하루가 되기를 원합니다. 주님과 함께 뛰는 페이스메이커가 되기를 원합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데 주님앞에서 언제나 말썽이고 도움이 되지 않는 다면 얼마나 안쓰러울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이시지만 우리를 향한 마음의 갈망이 있지 않겠습니까? 오늘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갈망은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의 말씀은 너무나 마음이 아픈 상황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사사시대가 끝나가는 때입니다. 어려움앞에서 은혜를 주시기를 계속해서 반복하셨습니다. 이유는 단단해져서 정금같이 쓰이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는데 들포도 열매는 맺는 민족이 되었습니다. 한 레위인의 첩을 베냐민 지파가 죽인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온 지파가 베냐민을 치려고 모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전쟁에 대하여 하나님께 묻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외부의 적들이 아닙니다. 자신의 동족입니다. 그 이유가 또한 안타까울 정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레위인이 어떻게 첩을 가질 수가 있습니까? 모든 규범이 깨어진 상태입니다. 불법에 대하여 불법으로 응징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사기의 중심 주제는 바로 왕이 없음으로 자신들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다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중심이 되지 않고 자신들이 중심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주셨지만 그 말씀이 중심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말씀이 중심이 되지 않는 삶은 결국 죄를 불러오고 그 죄에 대한 책임을 받게 됩니다. 오늘 우리의 결정과 생각에 하나님의 말씀이 중심이 되고 있습니까? 말씀이 중심이 되어야할 부분은 무엇입니까? 무엇을 위한 전쟁인가 궁금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수호하기 위한 전쟁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없애기 위한 전쟁입니다. 우리는 오늘도 인생의 전투에 임합니다. 건강, 관계, 질병, 절망, 경제, 미래 모든 것이 다 전쟁입니다. 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무엇인가요? 오늘 그들은 하나님께 묻습니다. 우리 중에 누가 먼저 가야 합니까? 서로 먼저 앞에 서지 않으려 합니다. 죽기 싫어서 이지요 그런데 하나님은 어리석은 그들을 향하여 답을 주십니다. 유다가 먼저 올라갈지라 합니다. 유다가 올라가서 집니다. 왜 하나님은 지는 싸움을 보여 주십니까? 이 전쟁은 죄의 전쟁이라는 것입니다. 죄의 전쟁은 오직 유다지파속에 예수그리스도가 죽어야만 하는 전쟁임을 말씀합니다. 죄인인 너희들을 위하여 죽어야하는 전쟁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결국 세 번을 지고 마지막에 회개한 그들에게 하나님은 승리를 허락하여 주십니다. 오늘 우리의 육신의 전쟁에 예수그리스도가 죽으러 오십니다. 예수가 대신 죽어야 우리가 살기 때문입니다. 이 은혜가 우리안에 있습니다. 우리가 원수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우리를 향한 아버지의 사랑을 확인시켜 주십니다. 사랑이 오늘도 우리의 목적이 되고 전쟁의 방법이 되기를 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마음에 드는 우리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페이스메이커가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전쟁이 허탄한 전쟁이 아니라 하나님을 붙들려는 전쟁이 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이 우리의 삶에서 가장 빛나는 가치가 되기를 원합니다. 무엇 때문에 호흡하십니까? 무엇 때문에 사십니까? 이 질문에 주님 때문입니다라는 분명한 고백이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나눔 : 1) 우리의 삶에 혹시 허망한 전쟁은 없습니까? 2) 예수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기 위하여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요? 기도 : 1) 나의 삶이 허탄하고 허망한 것을 얻는 전쟁이 되지 않게 하소서 2) 재난의 때에 우리가 더욱 소중하게 가져야할 것을 알게 하소서 3) 영적, 경제적, 신분적, 육신적으로 연약한 이들에게 승리를 허락하소서 4) 생명의 연결자로 재난의 때를 살아가게 하소서 본문 : 막8장11-13 제목 : 참된 표적의 삶을 삽시다. 찬송 : 94장
11 바리새인들이 나와서 예수를 힐난하며 그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거늘 12 예수께서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시며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적을 구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세대에 표적을 주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13 그들을 떠나 다시 배에 올라 건너편으로 가시니라 아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CS 루이스의 말로 시작하고자 합니다. “ 나는 아침에 해가 뜨는 것을 보는 것처럼 기독교를 믿는다. 내가 그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 때문에 다른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이 아침 무엇을 보기를 원하고 계십니까? 나로 오늘도 눈을 뜨게 하고 살리신 하나님의 목적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오늘도 두렵고 떨림으로 내가 원하는 삶의 방식이 아니라 아버지가 원하는 삶의 방향을 따라 걷기를 원합니다. 왜냐하면 나로 인한 것은 언제나 후회이지만 진리를 따라 행하는 호흡은 열매를 맺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향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고 있습니다. 이미 예수님은 수많은 표적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예수를 믿을 수 가 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증거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들은 눈이 떠 있으나 영적소경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의 신앙이 이러할 때가 있습니다. 재난의 때에 더욱 표적을 구하기도 합니다. 불확실한 믿음을 확인하고자 하는 우리들의 연약한 믿음이며 표적을 구하는 것은 결국 내 마음에 확인된 것만을 믿겠다고 하는 믿음의 주체가 나 자신임을 나타내 보이는 증거가 아닙니까? 오늘 나의 믿음의 바탕은 무엇입니까? 너는 본고로 믿느냐 보지 않고 믿는 자는 복되도다하시는 주님의 말씀이 진정 나에게는 믿어지는 말씀입니까? 주님은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셨습니다.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적을 구하느냐 하십니다. 이미 주님이 표적입니다. 표적을 구하는 것은 어리석음입니다. 표적은 싸인입니다. 싸인은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지 본질이 아닙니다. 그들은 본질을 보고서도 분별하지 못하고 비본질을 찾고 있습니다. 영의 눈이 열리지 못한 모습입니다. 영의 눈은 오직 예수를 영접할 때입니다. 받아들일때입니다. 내 자신이 죄인임을 보고 엎드릴 때입니다. 영의 눈이 열리고 묻게 도비니다. 오늘 내 삶에서 본질은 무엇이고, 비본질은 무엇인가? 내가 정말 추구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것이 후회없는 삶입니다. 예수그리스도 그분이기를 원합니다. 믿음은 나의 마음을 만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믿음은 내가 수정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새롭게 태어나는 것입니다. 본질이 아니고서는 예수그리스도가 아니고서는 경험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 길은 쉽지 않습니다. 십자가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나에게 요구하시는 십자가의 길은 무엇입니까? 오직 그 십자가에서 주님을 만납니다. 그분에게서만 위로가 있으며 은혜가 있으며 소망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에게 본질이 되십니까? 그분 한분으로만 아멘하실수 있습니까? 원하는 것이 나를 만족시키는 표적을 구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아니 하실지라도 나를 주님을 사랑합니다하는 이 고백이 오늘 우리의 인생에 남은 소망의 한 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왜냐하면 그 사랑은 세상의 어떤 곳보다 강하며 견고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본질을 함유한 인생은 가볍지 않습니다. 그 인생의 시선은 언제나 한곳만을 향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안에 거하시는 주님의 시선은 오직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오늘도 주님의 마음이 흐르기를 원합니다. 특별히 에녹선교회 회원분들을 위하여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재난의 때에 더욱 본질되신 예수그리스도를 사랑함으로 주님의 마음을 품어 두려움과 외로움을 이겨내는 남은 호흡들이 되어 아버지의 나라에서도 그 호흡이 아름다운 향기가 되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나눔 : 1) 우리가 표적을 구할 때가 있습니다. 오늘 구하는 표적은 무엇입니까? 2) 표적이 우리를 예수님께로 어떻게 인도합니까? 3) 오늘도 모든 삶의 현장에서 예수님한분만을 어떻게 고백하겠습니까? 기도 : 1) 보지 않고도 믿는 믿음으로 흔들리지 않게 하소서 2) 오직 주님만이 본질이시며 오직 주님만이 주인된 삶이 되게 하소서 3) 영적, 경제적, 신분적, 건강의 약화로 힘든 이들을 위로하소서 4) 재난의 때에 더한 굶주림으로 고통당하는 이들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본문 : 시편89편 3-6 제목 : 약속의 믿음 찬송 : 356장
3 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내가 택한 자와 언약을 맺으며 내 종 다윗에게 맹세하기를 4 내가 네 자손을 영원히 견고히 하며 네 왕위를 대대에 세우리라 하셨나이다 5 여호와여 주의 기이한 일을 하늘이 찬양할 것이요 주의 성실도 거룩한 자들의 모임 가운데에서 찬양하리이다 6 무릇 구름위에서 능히 여호와와 비교할 자 누구며 신들 중에서 여호와와 같은 자 누구리이까 아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바라며 저녁에는 주의 성실하심을 감사하게 됩니다. 오늘도 오직 주의 인자와 성실이 우리와 함께함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은 우리가 동기가 아닙니다. 오직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의지하고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택한 모든 자들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심지어 그 언약의 내용은 하나님이 자신이 희생하고 하나님이 홀로 이루시겠다는 내용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라 하십니다. 이것이 언약의 내용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각자를 향한 하나님의 언약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며 그 뜻은 바로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시고 우리가 그분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언약입니다. 오늘 시인은 힘들고 어려운 때에 한가지를 기억하고 신앙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바로 언약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도 넘어질수 없고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언약이 있기 때문이라 합니다. 택한 자와 언약을 맺으셨다 말합니다. 다윗이 하나님앞에서 득죄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일 후에도 하나님은 다윗과 다시 언약을 맺습니다. 왕의 위치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왕이라고 하는 힘을 나타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인정입니다.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왕을 통하여 세상의 참된 왕이 등장하는 것임을 말씀합니다. 구원은 우리의 노력과 상관없이 하나님이 이루십니다. 구원이후로는 우리는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가야 합니다. 다윗을 향하여 언약을 이루신 것처럼 우리들에게도 동일한 언약이 있으니 그 언약을 이루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주님과 맺은 어떤 언약입니까? 바로 갈보리언덕의 십자가 언약입니다. 자신의 아들을 죽이시면서 우리를 살리시는 하나님 아버지 언약입니다. 이 언약이 우리안에 살아 있기를 원합니다. 주님과 함께 맺은 언약은 무엇입니까? 나는 어떤 언약을 이루며 오늘을 살아가야 합니까? 재난의 때에 정말 우리에게 허락된 언약이 존재합니까? 오늘 4절에는 먼저 자손을 영원히 견고하게 세운다고 말씀합니다. 자손을 세운다는 점은 생명을 주신다는 말씀이며 생명을 위한 환경을 조성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자손이 영원히 견고하게 서는 것은 다른 어떤 것도 무너뜨릴수 없음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늘 우리의 마음에 이 약속의 확신이 강하게 세워지기를 원합니다. 죽은 자로 사는 것이 아니라 산자로서의 삶을 살아갑니다. 두 번째로 왕위를 대대에 세우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왕되신 예수그리스도가 우리의 조상이 될 것임을 말씀합니다. 만왕의 왕이시오 만주의 주이신 예수그리스도로 인하여 우리가 왕족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습니다. 이 은혜가 오늘 우리게 있습니다. 물러서지 않아야 합니다. 세상의 다른 왕이 우리를 모욕하고 무너뜨리려 해도 결코 무너질 수 없는 왕족입니다. 그러기에 더욱 당당하기를 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믿음을 가진 자는 찬양할 것이라 합니다. 주의 성실하심을 찬양할 것이라 합니다. 세상에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하십니다. 우리 주님은 비교할 수 없는 분이십니다. 세상은 그분을 비교하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분이 주시는 것은 세상의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인자와 성실로 약속을 이루어 가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찬양과 감사와 높임이 있는 우리의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 힘냅시다. 일어섭시다. 나눔 : 1) 나에게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약속은 무엇인가요? 기도합시다. 2) 세상과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은 어떻게 우리에게 찾아옵니까? 기도 : 1) 주님의 언약을 잊지 않게 하시고 인자와 성실로 따라가게 하소서 2) 육신적, 영적, 경제적, 신분적으로 어려움을 당하는 이들을 위하여 3) 세상과 주님을 비교하지 않게 하소서 본문 : 사사기 15장15-19 제목 : 엔학고레의 믿음 찬송 : 382장
15 삼손이 나귀의 새 턱뼈를 보고 손을 내밀어 집어들고 그것으로 천 명을 죽이고 16 이르되 나귀의 턱뼈로 한 더미, 두 더미를 쌓았음이여 나귀의 턱뼈로 내가 천 명을 죽였도다 하니라 17 그가 말을 마치고 턱뼈를 자기 손에서 내던지고 그 곳을 라맛 레히라 이름하였더라 18 삼손이 심히 목이 말라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께서 종의 손을 통하여 이 큰 구원을 베푸셨사오나 내가 이제 목말라 죽어서 할례 받지 못한 자들의 손에 떨어지겠나이다 하니 19 하나님이 레히에서 한 우묵한 곳을 터뜨리시니 거기서 물이 솟아나오는지라 삼손이 그것을 마시고 정신이 회복되어 소생하니 그러므로 그 샘 이름을 엔학고레라 불렀으며 그 샘이 오늘까지 레히에 있더라 아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로운 하루가 시작이 되었습니다. 오늘도 우리가 좋은 것에 집중하며 감사하며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언제나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무엇에 집중하기로 작정하십니까? 바라기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집중하는 우리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함께 하시는 우리 주님께 집중하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정말 중요한 것에 집중하지 못한 한 사람의 삶이 나옵니다. 바로 삼손입니다. 나실인에 대해서는 주일에 말씀을 통하여 나누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께만 집중하고 살아가는 삶이 바로 나실인의 삶입니다. 삼손의 인생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는 무엇에 집중해야 합니까? 삼손이 활동하던 때는 블레셋과의 전쟁이 있던 시대였습니다. 언제나 약한 유다를 침공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사사 삼손을 택하여서 백성에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삼손을 결박하여 블레셋에게 넘겨주는 이야기입니다. 자신들이 살고자 삼손을 결박하여 죽이고자하는 상황입니다. 상황이 힘들고 어려우면 자기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 인지상정이지만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있습니다. 사실 인간이 그렇습니다. 에덴동산에서는 자신을 위하여 하나님을 부인합니다. 갈보리언덕에서는 자신들의 안위를 위하여 예수를 결박하여 십자가에 못박습니다. 오늘 우리는 자유합니까? 혹시 우리의 삶에도 하나님의 것을, 신령한 것을 결박하고 있는 부분이 있지 않는가 회개하게 됩니다. 우리의 행복을 위하여 예수를 결박하고, 우리의 취미를 위해서도 예수를 결박하고, 우리의 경제적인 이익을 위해서도 예수를 결박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삼손도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결박에서 풀려납니다. 그런데 나귀의 턱뼈로 블레셋 사람 천명을 죽입니다. 천이 의미하는 것은 완전한 승리를 의미합니다. 죽은 이들이 산을 이룹니다. 삼손은 이것을 라맛레히라고 부릅니다. 턱뼈의 산이라는 말입니다. 자신의 업적이 드러납니다. 자신의 힘으로 된 것처럼 내세우기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18절에 자신의 힘으로는 물 한모금도 해결할 수 없는 자임을 실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잊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작은 은혜앞에서도 우리의 육신의 모습들이 드러납니다. 우리는 목이 마르면 죽어야 하는 존재입니다. 생명을 부르시면 모든 것을 놓고 가야하는 인생입니다. 우리는 무엇에 집중합니까? 하나님앞에서 자랑입니까? 아니면 죄인의 모습입니까? 바라기는 언제나 나는 없고 주님의 은혜만이 전부입니다하며 고백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삼손은 하나님이 주신 물을 먹고 정신이 회복되어 소생하고 그 물을 엔학고레라고 부릅니다. 부르짖는 자의 샘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 살려주세요 하니 땅에서 물이 솟아납니다. 이것이 인생이고 이것이 믿음이며 이것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은혜아니면 죽은 자임을 고백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목이 마르십니까? 부르짖고 나아가기를 축원합니다. 그리하며 사막에도 강을 내시는 하나님께서 은혜의 샘을 경험합시다. 주님이 목마르다하시고 다 이루셨다 하셨습니다. 바라기는 다 이루시셨음을 믿고 오늘도 은혜에 집중하며 저녁에 수요말씀강해로 만나는 은혜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나눔 : 1) 나는 오늘 무엇에 집중하기를 원합니까? 2) 나의 레맛레히가 혹시 있지 않습니까? 3) 엔학고레의 은혜를 언제 경험하셨습니까? 기도 : 1) 라맛레히가 아니라 엔학고레에 집중하게 하소서 2) 재난의 때에 육신적, 경제적, 영적으로 힘든 지체들에게 은혜를 주소서 3) 이제는 지나가게 하시며 내일의 믿음이 준비된 된 자들로 서게 하소서 본문 : 고전 12장 1-3 제목 : 고백하며 삽시다. 찬송 : 183장
1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2 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신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 갔느니라 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아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즈음은 별일 없이 산다는 것이 행복임을 깨닫게 됩니다. 전화가 오면 때로 가슴이 철렁하기도 하지만 서로 안부를 묻는 것이 별일 없는 삶을 확인하는 것이기에 오늘부터 구역별로 전화로 안부를 묻고자 합니다. 만남가운데 우리 모두에게 별일 없는 은혜가 임하기를 원합니다. 믿음이 능력이 되는 이유는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산영이신 예수그리스도의 영이 믿음과 함께 하기에 신앙은 언제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오늘 성령충만의 역사가 흐르기를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무엇보다 오늘 성령충만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령충만이 바로 힘이요 능력이요 소망이 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고린도교회를 향하여 성령충만의 역사를 말씀하십니다. 어렵고 힘든 과정을 극복하는 것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신령한 것에 대하여 알기를 원하신다 말씀합니다. 성령에 대하여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성령을 알지 못하면 이끌려 가는 인생이 되고 맙니다. 사단의 역사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반대 방향으로 인간의 욕심이 이끄는 방향으로 갑니다. 지난 시간 우리들의 모습이 그러했습니다. 우리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걸었기에 하나님은 모든 것을 올 스톱을 시키셨습니다. 그리고 다른 방향이 존재함을 우리에게 깨닫게 해 주고 계십니다. 오늘 우리가 원하는 방향은 어디입니까? 성령이 이끄시는 방향으로 걷는 우리이어야 합니다. 성령하나님은 우리를 어떤 방향으로 이끄십니까?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은 진리이신 예수님안으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예수님안은 어디입니까? 예수님의 품입니다. 예수님의 날개아래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안입니다. 오늘도 죄많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용서하시는 그 사랑을 우리로 보게하시고 깨닫게 하십니다. 호흡할 수 있음도, 치료케 하심도, 소망을 갖게 하심도 예수님의 사랑이 아니라면 우리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신령한 것은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을 아는 것입니다. 세상의 영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오직 성령님만이 우리로 그 사랑을 알게 하십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한번도 우리를 실망시키신 적이 없으신 신실하신 주님을 바라보기를 원합니다. 그 사랑이 분명히 지키실 것을 확신하기를 원합니다. 부족하고 연약한 이들을 지혜롭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는 그 섭리를 붙들기를 원합니다. 이 사랑을 아는 자안에서 성령님은 고백하게 하십니다. 예수만이 주님이심을 고백하게 하십니다. 눈에 보이는 다른 것을 붙들기에 고백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비한 것들이 있어서 고백하는 것이 아닙니다. 은사로 문제가 있던 고린도교회는 결국 이 예수의 사랑을 알지 못하여서 온전히 하나가 되지 못함을 봅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서 나오는 주님을 향한 고백이 진실한 고백입니까? 그 사랑안에서 표출됩니까? 그렇다면 포기할 수 없습니다. 좌절할 수 없습니다. 배반할 수 없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포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십자가를 지고 갑니다. 이것이 신령한 일입니다. 오늘도 우리의 삶에 신령한 일이 많아지기를 원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성령으로 잉태된 주의 백성들이기 때문입니다. 아멘 나눔 : ) 오늘도 나를 이끄는 힘은 무엇이며 방향은 어디인가? 2) 성령의 이끄심을 위하여 나는 오늘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기도 : 1) 나를 향하신 주님의 사랑을 더욱 깊이 사모하게 하소서 2) 재난의 때에 영적인 탄력회복력이 강해지게 하소서 3) 영적으로, 경제적으로, 육신적으로 곤고하는 이들에게 은혜를 허락하소서 본문 : 마가복음 6장 38-44 제목 : 감사합시다. 찬송 : 314장
38 이르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 하시니 알아보고 이르되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더이다 하거늘 39 제자들에게 명하사 그 모든 사람으로 떼를 지어 푸른 잔디 위에 앉게 하시니 40 떼로 백 명씩 또는 오십 명씩 앉은지라 41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고 또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시매 42 다 배불리 먹고 43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44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아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에서의 첫날입니다. 이번 한주동안에도 말씀안에서 승리하는 우리이어야 하겠습니다. 찰리 채플린의 말입니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스크린을 통해서보면 아름답게 보이나 자세히 인물들을 들여다보면 모두가 슬픔을 안고 살아감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 아침 저는 이 말을 바꾸어 말하고 싶습니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슬픔이나 가까이서 보면 희극입니다. 왜 입니까? 우리의 삶의 구석 구석마다 주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삶도 분명히 죽음이라는 운명이 우리를 힘들게 하지만 그안에서 역사하시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감사와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을 믿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온 이들이 그러합니다. 그들에게 역사와 삶은 모든 것이 가난이었고 절망이었습니다. 예수님앞에 나온 이들은 배가 고픈 인생들이었습니다. 자신들이 가진 것이 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 뿐만 아니라 제자들에게는 믿음마저도 없었습니다. 이들을 먹이려면 이백 데나리온이 필요하지만 자신들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조각과 물고기 두 마리였습니다. 광야의 인생길에 우리의 모습입니다. 멀리 보이는 것들이 비극입니다. 우리는 광야에서 굶어서 죽어가야 하는 인생입니다.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멀어진 인생의 끝은 결국 아사셀의 염소처럼 벼랑에 떨어져 삶을 마감하는 것이 우리입니다. 그러나 이 비극을 주님은 희극으로 만들어 버리십니다. 한 소년이 가지고 온 그 작은 것을 하나님 앞에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십니다. 그리고 나누어 주고 나누어 주어도 다함이 없습니다. 오천명이 먹고 12광주리가 남습니다. 수많은 영적인 의미가 있지만 가장 본질은 죽음이 예수안에서 생명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인생의 생명은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안에 있음을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에서도 그들이 살아가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으며 하나님의 은혜뿐임을 우리에게 말씀하여 주십니다. 예수님앞에서는 비극이 희극이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자세히 살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 오병이어가 주님의 손에 들려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허락하신 것은 예수의 손이었습니다. 아니 예수님이 떡이 되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것은 유한하지만 예수그리스도는 영원한 것임을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이 영원한 떡임을 그리고 우리가 그 떡으로만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음을 가르쳐 주십니다. 그러나 이 육신의 떡만을 사모하는 이들은 모두가 주님 곁을 떠납니다. 주님의 살은 참된 양식임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구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주님의 손에 올려지는 인생이기를 원합니다. 자신의 죽음으로 우리를 축복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우리가 품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인생이 비극이 아니라 희극일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세상의 것을 하늘의 것으로, 내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바라보는 데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주님의 손에 들려지는 데 있습니다. 이를 위하여 오늘도 주님은 우리에게 그분의 살과 피를 주십니다. 우리는 그 은혜와 그 사랑으로 살아갑니다. 하늘에 영원한 양식에 우리의 배를 채워가기를 원합니다. 그냥 먹는 것이 아니라 감사하며 되새김질을 해야 합니다. 주님의 양식은 부드럽고 달콤하지 않습니다. 딱딱합니다. 거칩니다. 왜냐하면 내가 아프지 않고서는 먹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 하늘의 양식으로 하늘의 떡으로 배부르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원합니다. 나눔 : 1) 나는 어느 떡에 더 관심이 많은가? 2) 우리 인생에 주님의 손에 올려드리는 것은 무엇이 있는가? 기도 : 1) 주여, 광야에서 배고픔으로 죽어가는 자가 되지 않게 하소서 2) 하늘의 것, 신령한 것, 주님의 십자가로 영이 충만케 하소서 3) 고난의 때에 육신적, 영적, 경제적, 신분적으로 어려운이들에게 은혜를 4) 영적 회복탄력성이 강해지는 한날의 삶이 되게 하소서. 본문 : 시편 85편 19-13절 제목 : 주의 길을 닦으십시다. 찬송 : 298장
8 내그 하나님 여호와께서 하실 말씀을 들으리니 무릇 그의 백성, 그의 성도들에게 화평을 말씀하실 것이라 그들은 다시 어리석은 데로 돌아가지 말지로다 9 진실로 그의 구원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가까우니 영광이 우리땅에 머무르리이다 10 인애와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 맞추었으며 11 진리는 땅에서 솟아나고 의는 하늘에서 굽어보도다 12 여호와께서 좋은 것을 주시리니 우리 땅이 그 산물을 내리로다 13 의가 주의 앞에 앞서 가며 주의 길을 닦으리로다. 아멘 사랑하는 여러분, 한주의 마지막 날 아침 웃으며 시작하십시다. 성공한 인생이란 글의 일부분입니다. 10대는 성공한 아버지를 뒀으면 성공이며 40대는 2차 쏠수 있으면 성공이요 60대는 아직 돈벌고 있으면 성공이며 70대는 건강하면 성공이요 80대는 아내가 밥차려주면 성공이요 100세는 아침에 눈뜨면 성공이라는 글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아침에 눈을 떴으니 감사입니다. 눈이 떠지는 그날까지 말씀묵상합시다. 오늘 우리가 묵상할 신앙고백은 간구하는 고라자손의 시입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포로에서 벗어나 고향으로 왔으나 모든 것이 좌절이고 절망입니다. 무엇하나 이루어지는 것이 없습니다. 모두가 포기할 때에 시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과거에 도우셨던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실 것이라 합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가 철저히 회개해야한다 합니다. 혹시 우리의 삶의 모습이 이와같지 않습니까? 오늘 시인의 고백처럼 우리도 동일하게 아버지 앞에 나아갑시다. 먼저는 8절입니다. 내가 하나님 여호와께서 하실 말씀을 들으리니라고 합니다. 자신들이 어려움을 당한 이유가 바로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듣지 않았음에 있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듣지 않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다른 것을 더 사랑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추구하였습니다. 현실적으로 더 힘을 발휘하기 때문입니다. 재난의 때를 이겨내는 것은 현실적인 힘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이 재난의 때를 넘어서게 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경험되며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기록된 말씀을 통하여 성령을 통하여 레마의 말씀으로 들려집니다.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 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보다 더욱 의지하는 것이 있습니까? 때와 시간을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하십니다. 말씀을 마음으로 들어야 합니다. 두 번째로는 8절에 그들은 다시 어리석은 데로 돌아가지 말지로다합니다. 어리석은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안계시다고 생각하는 자가 어리석은 자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을 의지하는 자는 하나님이 없다고 합니다. 어리석은 자는 언제나 땅만 바라보고 땅을 위하여 살아가는 삶입니다. 백성들이 그러하였습니다. 땅에 풍요가 전부라고 생각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땅이 아니라 하늘이 중요함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우리들은 인애와 진리가 같이 만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인자함과 공의가 공존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가 기준이 되어 선택하고 판단합니다. 의와 화평이 서로 입을 맞출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보다는 언제나 우리의 생각이 주인이 되는 어리석은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이일을 이루셨습니다. 죄인인 우리들을 위하여 인애와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입맞추는 은혜를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를 십자가에서 새롭게 하여 주시고 우리의 비젼이 이제 주님께 있음을 우리에게 말씀하여 주십니다. 우리의 마음에서 진리를 솟아나고 하늘에서는 의가 이루어집니다. 믿음의 역사입니다. 죄가 사하여지고 은혜가 열매맺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죄인입니다. 그런 우리를 예수의 사랑으로 사랑하여 주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소망이 있고 감사가 있습니다. 좌절하지 말고 다시 역사하실 하나님을 신뢰하며 믿음으로 서야 합니다. 믿음이 앞설때에 주님은 역사하십니다. 오늘도 우리는 주의 길을 믿음으로 닦아내기를 원합니다. 내일은 거룩한 주일입니다. 한 주간 허락하신 말씀을 다시 한번 돌아보고 기도문을 만들기를 원합니다. 회개하고 더욱 깊게 주의 말씀을 붙들기를 원합니다. 때로 지쳐가는 마음이 있습니다. 무기력한 영적인 슬럼프가 시작되는 때이기도 합니다. 기억하십시다. 고난의 때가 살아계신 주님을 경험하는 준비의 시간임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이를 위하여 주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이 없다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야 하겠습니다. 사랑으로 길을 내신 그 은혜에 감사하며 오늘도 주님오실 길을 닦기를 원합니다. 그 길은 영생의 길이며, 영광의 길이며, 영원한 길입니다. 이 길끝에서 기다리시는 주님과 함께 영광의 아침을 맞이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나눔 : 1) 한주동안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입니까? 2)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묵상하고 계십니까? 3) 나의 어리석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기도 : 1) 회개함으로 주의 오실 길을 예비하는 자 되게 하소서 본문 : 사사기 6장 22-24 제목 : 여호와 샬롬의 은혜를.. 찬송 : 408장
22 기드온이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 줄을 알고 이르되 슬포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내가 여호와의 사자를 대면하여 보았나이다 하니 23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안심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죽지 아니하리라 하니 24 기드온이 여호와를 위하여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것을 여호와 샬롬이라 하였더라 그것이 오늘까지 아비에셀 사람에게 속한 오브라에 있더라 아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롭게 맞이하는 오늘은 어제보다 더 행복하고 더 좋은 일들이 많은 선물인 하루가 되기를 원합니다. 힘들도 어려운 때에 늘 사단은 우리의 마음과 삶에서 빼앗으려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평안입니다. 세상의 가치안에서 이해되는 평안은 우리의 삶에서 누리기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평온하고 만족할 때에 평안이라고 정의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안에서의 평안은 세상의 가치하고는 다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은 하나님과의 관계안에서의 평안으로 정의합니다. 평안을 샬롬이라고 합니다. 샬롬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안에서 경험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에서 평안이 오늘 본문에 등장합니다. 사사들을 통하여 통치하던 시대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제나 약소국이었습니다. 특별히 미디안의 공격에 약탈당하고 굶주린 삶을 살았습니다. 이러한 때에 하나님께서 기드온이라는 사람을 세웁니다. 그를 찾아와 주시고 만나주시는 장면이 있고 오늘 본문은 여호와의 사자를 보고 기드온이 고백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위하여 택한 사람은 당연히 힘이 있고 권력이 있고 능력이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그렇지 못합니다. 자신을 자기의 가문에서 가장 적은 자로 설명하며 하나님의 말씀이 들릴 때에 믿지 못하여 하나님을 시험하며 미디안의 공격이 무서워서 곡식을 포도주틀에 넣어 탈곡을 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기드온을 택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평강입니다. 사람의 힘을 통하여 평강을 이루시는 것이 아니라 약한 자를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일하심이 드러나게 하십니다. 왜냐하면 사람으로부터 시작된 평화는 참된 평화일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 평화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평화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약한 우리를 사용하셔서 평화를 이루기를 원합니다. 사람의 힘과 소유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서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소유함으로 참된 평화를 누리는 우리들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세상에 자신을 약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없습니다. 처음부터 하나님을 의지하고자 하는 이들도 없습니다. 죄인인 인간의 특징은 언제나 자신이 주인이 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기드온을 택하심은 우리로 비워냄의 자리에 서야함을 말씀하십니다. 세상을 붙들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비워냄으로 온전히 하나님을 채움으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평화를 이루는 것입니다. 우리가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입니다. 하나님을 채우는 것입니다. 어떻게 가능합니까? 하나님이 주인되게 하는 삶입니다. 무엇을 행하고 생각하든지 먼저 물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찾는 것이 비우는 것이며 묻는 것이며 그안에 성령의 역사는 일어납니다. 오늘도 우리의 삶의 순간에 먼저 여쭙는 믿음으로 하나됨의 은혜를 누리기를 원합니다. 기드온은 찾아오신 여호와의 사자를 보고 자신은 죽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맞습니다. 죄인이 하나님을 뵈면 죽는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여호와 샬롬이라 합니다. 죽어야할 죄인이 평강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일을 예수님을 이루셨습니다. 우리가 죄인이 되었을때에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아버지의 사랑을 확증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샬롬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안에 거하여 죄사함의 은혜를 경험하게 될 때에 비로서 샬롬이 일어납니다. 이 샬롬은 누구도 끊을 수 없습니다. 이 샬롬은 소멸되지 않습니다. 이 샬롬은 언제나 새롭고 우리를 다시 소생시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이루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샬롬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샬롬은 하나님과 함께 하심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덮는 것이 샬롬입니다. 이 샬롬은 영원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도 우리는 우리 자신을 비워내고 은혜로 채우며 거저 받은 이 은혜를 우리 주변에 있는 이들과 나누기를 원합니다. 재난의 때를 지나가는 동안 우리가 기도와 사랑을 통하여 더욱더 평강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평강을 전하는 하나님의 도구로서의 삶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나눔 : 1) 내 자신이 비워내야 하는 부분이 무엇입니까? 2) 여호와 샬롬을 누구에게 전하기를 원하십니까? 기도 : 1) 모든 가정과 사회와 세계에 여호와 샬롬의 은혜가 흐르게 하소서 2) 재난의 현장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든 의료진들에게 샬롬의 은혜가 ... 3) 세계의 지도자들이 하나님앞에 서게 하시며 샬롬을 전하는 도구가 되게.. 본문 : 고전6장 12절-15절 제목 : 거룩한 지체이게 하소서 찬송 : 420장
12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 13 음식은 배를 위하여 있고 배는 음식을 위하여 있으나 하나님은 이것 저것을 다 폐하시리라 몸은 음란을 위하여 있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여 있으며 주는 몸을 위하여 계시니라 14 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 15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녀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수 없느니라“ 아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로운 아침이 밝았습니다.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함으로 이 고난의 때에 더욱 가까이 다가오는 주님의 사랑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주님께서 음행하는 고린도교인들을 향하여 하시는 말씀입니다. 영지주의의 영향으로 인하여 영만 중요하고 육신은 중요하지 않는다 생각하고 육은 육욕을 따라 행하고 있는 이들을 향하여 신앙은 우리의 모든 것을 거룩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서도 우리의 모든 것이 오직 주를 향하여 쓰여지는 은혜를 구하기를 원합니다. 주님은 먼저 자유에 대하여 언급합니다. 모든 것이 가하나 유익한 것은 아니고 모든 것이 가하기에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입니다. 우리는 진리를 앎으로 참된 자유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얽매이는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하여 어떤 이들은 자유가 아닌 방종의 자리에 섰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안에서의 자유는 내 마음가는 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주인이시기에 주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이 참된 자유입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어떤 장애앞에서도 자유하며 주님이 원하시지 않는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얽매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억압이고 얽매임으로 보이지만 우리에게는 참된 자유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오직 주님안에서만 참된 평안을 누리기 때문입니다. 주안에서의 자유는 주님의 말씀에 더욱 순종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몸을 쳐서 말씀에 복종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안에서의 헌신이 우리를 자유하게 합니까? 주님을 향한 십자가 고난이 우리를 더욱 사랑하게 합니까? 그렇다면 진리를 아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이 자유를 향하여 마음껏 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참된 자유는 결국 주인이 누구인가에 따라서 결정됩니다. 음식은 배를 위하여 있고 배는 음식을 위하여 있습니다. 그러나 배나 음식이나 모든 것이 주님을 위하여 있습니다. 왜냐하면 배나 음식이나 하나님의 주권아래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셔야만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몸도 마찬가지입니다. 몸은 음란을 위함이 아닙니다. 자기의 욕망을 채우는 도구가 아닙니다. 몸은 주님을 위하여 있습니다. 그러기에 주님도 몸을 위하여 있습니다. 단순한 육신의 몸이 아니라 주님이 거하실 성전으로서의 몸을 위함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몸을 더욱주님을 위하여 거룩하게 해야 합니다. 바울은 후에 우리의 몸을 성령의 전이라고 말씀합니다. 몸을 위하여 건강에 신경을 쓰고 예방하는 일은 중요한 일입니다. 생명의 주권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러나 건강하게 삶을 유지하는 것은 우리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건강이라는 것은 단순히 육체의 나이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인적인 건강입니다. 성전인 몸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건강을 유지해야 합니다. 이 길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길외에는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몸이 주의 성전이 되었기에 이제 우리는 주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야 합니다. 20절입니다.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하십니다. 몸으로 어떻게 영광을 돌릴수 있습니까? 주님이 주인되어 생각하고 행동함으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이루는 우리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구체적으로 가정에서 사업장에서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그리스도의 향기가 드러나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거룩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거룩은 하나님의 말씀의 뒤를 따르는 것입니다. 한 걸음 한 걸음 말씀을 따라 사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먼저 사랑하고 먼저 헌신하고 먼저 십자가의 길을 걷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십자가의 길위에서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벌써 4월 중순이 지나고 있습니다. 이제 멀지 않아 우리에게도 자유가 허락될 것입니다. 남은 생 육신으로, 정신으로 그리고 영으로 모든 일에 대하여 참된 자유를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어 오늘 하루도 오직 주님을 더욱 사랑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나눔 : 1) 참된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방종하는 부분은 무엇인가? 2) 시간과 삶을 거룩하게 살기로 구체적으로 결단할 부분이 있다면? 기도: 1) 방종하는 부분을 회개하게 하소서 주님께서 주인되소서 2) 하늘의 문을 여시사 고난의 때가 재난의 때가 회복되게 하소서 |